top of page
  • 작성자 사진Alex

호흡 (강제된 호흡 vs 자연적인 호흡)


저는 4살의 어린 아이였을 때 호흡을 알아차리기 시작했습니다. 나의 어머니는 영원히 떠났고, 아버지는 주말마다 저를 언덕과 산으로 데리고 가 여러 산책로를 달리게 하였습니다. 이 등산로들은 모두 많은 사람이 달리는 인기 트랙이었는데, 아버지는 그냥 걸으며 친구들과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그래서 저에게 항상 혼자 뛰어가라고 재촉했습니다. 다른 그룹의 사람들을 따라가라고 말입니다. 보통 마을의 중앙 광장에 있는 도착 선에서 아버지를 기다리면 다시 볼 수 있었습니다. 달리는 동안 저는 발바닥, 숨, 심장박동만이 존재하는 깊은 집중 상태에 있었습니다.


제가 뇌로 하는 일은 단지 힘이 떨어지지 않도록 발바닥의 리듬을 호흡과 심장박동으로 맞추어 정렬하는 것이었습니다. 모든 것이 리듬을 따라 체력의 한계를 찾아왔습니다. 저는 호흡이 필요한 곳을 관찰하고 때로는 의지로 지시했습니다. 팔다리가 통증을 느끼기 시작하면 발목, 무릎이나 엉덩이로, 또는 폐에서 추가적인 힘이 필요하면 그를 향해 호흡을 들이마시는 시간을 더 길게 하였습니다. 제 관심의 초점은 달리기를 위해 철저히 몸 안에 집중하는 것이었습니다. 때로는 5km이지만 때로는 10km 또는 그 이상의 경우도 있습니다.


14살까지 거의 매주 계속 달렸습니다. 저는 훌륭한 달리기 선수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저는 훌륭한 명상가가 되었고 호흡의 힘을 깨닫고 있었습니다.


호흡은 생명력인 프라나(Prana)가 이동하는 운반 수단입니다. 인도에서는 부상을 입었거나 기능을 하지 않는 뇌를 가지고도 여전히 살아 있지만 숨을 쉬지 않는 몸을 가지고 있다면, 그것이 죽음이라고 말합니다. 사실, 호흡은 생명의 운반자이자(움직임으로써) 생명의 힘입니다.


숨은 바람이고 바람은 대부분 산소입니다. 프라나는 산소에 저장됩니다. 산소는 연소하여 열과 빛을 생성합니다. 이 빛은 우리가 볼 수 있게 해주는 내면의 시각을 담당합니다. 열은 우리 세포에 진동의 힘을 전달하는 파동이며, 세포가 파동을 일으키고 서로 소통하고 교환하여 삶의 리듬의 유동성으로 치유하고 살아갈 수 있도록 합니다.


그때 내가 경험한 호흡은 강제된 호흡입니다. 뇌-정신 체계에 의해 통제되는 호흡입니다. 그것은 치유하는 호흡이고, 복원하는 호흡이며, 현현(manifestation)의 통로를 여는 바람입니다. 호흡으로 나는 내 몸을 형성할 수 있습니다. 나는 내 근육을 강화하기 위해 무거운 무게를 들 필요가 없습니다. 숨을 들이쉬고 참는 연습을 몸에서 필요한 부분을 위해 할 수 있습니다(기공 수행과 같이). 거기에 프라나와 함께 있으면, 사랑과 에너지의 의식을 소모하여 더 강하고 잘생긴 근육을 만들 것입니다. 그래서 나는 장기에서 피부나 뼈에 이르기까지 치유가 필요한 내 몸의 다른 모든 부분에 대해서도 똑같이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달리기 이후, 때로는 18km를 달리고 난 뒤, 남들보다 훨씬 빨리 근육이나 관절의 통증을 치료할 수 있었습니다. 나는 내면의 호흡을 조절하고 내가 필요한 곳으로, 이 경우에는 폐로, 향하는 것만으로 몸의 에너지를 빠르게 회복할 수 있었습니다. 나는 부상(일반적으로 긁힌 자국이나 화상)을 몇 주가 아닌 며칠 만에 매우 빠르게 치료했습니다.


우리의 에너지를 지시하고 만물을 실현해 내는 생각을 제어하는 도구입니다. 나는 심장 박동의 리듬도 조절할 수 있었습니다. 심장 근육에 주의를 기울이면서 박동을 상당히 줄일 수 있었습니다. 나는 쉬거나 걸을 때 분당 60회 미만을 유지하고 있었고 가만히 앉아 명상할 때는 훨씬 더 낮아졌습니다.


호흡과 마음의 생각을 통제하는 법을 배우는 적절한 기술을 프라나야마(pranayama)라고 합니다. 이것은 요가의 매우 강력한 기술입니다. 나는 20살 즈음에 그것을 연습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때 나는 히말라야산맥을 탐방하였고, 가만히 앉아 배울 수 있는 멋진 수도원을 찾기 위해 높은 곳을 오르기 시작했었습니다.




그래서 "숨을 참는 것"(프라나야마)의 수련은 삶에 있어서 에너지, 사랑, 치유, 행동, 힘의 확장 또는 불순물 제거를 가져옵니다.


한편, 오고 가는 자연스러운 호흡을 관찰하면서 집중을 배우는 연습이 위빠사나 명상(vipassana)입니다. 이 기술은 마음 챙김(mindfulness)에 대한 자각을 갖게 하여 이 삶의 현실을 넘어서는 더 높은 의식 상태로 여러분을 데려다줄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가르치신 이 기술로 우리는 고통, 평화, 깨달음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은 자연스러운 호흡(아나빠나, anapana)에서 집중을 배우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저는 21살에 처음으로 태국 북쪽에 있는 절에 들어갔습니다. 처음 10일이 지난 후, 저는 매우 열정적이었나 저는 제가 아직도 내면으로의 여행의 시작점에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절의 주지 스님에게 더 오래 머물며 더 많이 배울 수 있는지 물었습니다. 물론 그는 그 말을 듣고 기뻐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28일 동안 머물렀습니다(달의 한 주기와 같았습니다.).


자연적인 호흡에 마음의 관심을 집중하는 것은 동요하는 마음을 통제하게 합니다. 제 뇌는 항상 너무 빨라서 모든 것을 알고 싶어 하고 항상 대답과 이유를 물어봤습니다. 그날 저는 제 뇌와 생각의 광란적인 돌진에 진절머리가 났기 때문에 수도원에 들어가기로 결심했습니다. 나의 뇌와 마음의 질주는 나 자신을 지식과 진실을 찾는 데 있어서 방해되는 동요와 스트레스의 상태로 이끌고 있었습니다. 진실을 알기 위해서는 뇌가 고요하거나 조용해야 합니다. 그것의 활동은 거의 완전히 0으로 감소하여야 합니다! 기본적으로 완전히 이완하여야 합니다. 마치 죽은 듯이 잠든다는 표현처럼.


위빠사나 명상 5일 차에 좌절감을 느꼈던 것을 아주 분명하게 기억합니다. 위빠사나는 숭고한 명상(Noble silence)이며 수행 중에 아무도 말을 해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처음 며칠 동안 나는 사람들이 웃고 전화를 받거나 마치 시장 밖에 있는 것처럼 수다를 떨고 있는 것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주지 스님에게 이 사원에 내가 조용히 앉을 수 있는 장소가 있는지 매우 화를 내며 물었습니다.


하하하하하하!!! 

주지 스님은 나에게 아주 좋은 웃음을 보여주었습니다.


그 순간 지혜의 빛이 나를 강타했습니다!


모든 순간에서 듣고 싶었던 건 오직 나였습니다.

당연하게도 내면의 고요한 숨결이 아니라 외부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와 소음에 나는 주의를 돌리고 있었습니다.


자신이 내 감각과 감각 기관을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감각과 외부적 사실이 어떻게 우리의 삶을 지배하는지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그날부터 나는 정신이 어떻게 기능하는지에 대한 진정한 관찰을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다시 말하지만, 모든 것은 우리의 몸과 정신을 자연의 바람인 호흡에서 집중을 찾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그것은 참나 - 우리 본성의 근원인 사랑하고 친절한 의식적인 존재 - 에 대한 인식과 지식을 가져옵니다.



2023년 8월

글: 알렉스, 번역: 지오


 

- 이메일 : alex@urlight.guru (영어, 이탈리아어 가능)

조회수 179회댓글 0개

Comments


bottom of page